태그 보관물: 안경

안경

대학 다닐 때 까지만 해도, 대포고냥군도 눈이 꽤 좋았었던 것 같다. 양안 중에 왼쪽은 좋은 편은 아니었지만, 오른쪽은 항상 1.5 이상은 나왔던 것 같으니까. 하지만, 눈이 좋았다는 나도 안경을 썼었는데 그건 뭔가를 집중해서 볼 때 였다. 양쪽 눈이 시력 차가 큰 데다가, 왼쪽 눈은 원래 난시가 있어 오랜시간 집중해서 뭔가를 보고 나선, 완전히 초점이 뒤틀어져 버리는 증상이 있었다. 대학 입시를 볼 때 였다. 어쩌다 맨 앞자리에 앉게 되었는데, 심지어 4교시가 되어선 칠판에 적힌 시험 문제의 오류 수정 게시가 보이지 않아 칠판에 얼굴을 갖다대고 봤었던 생각이 난다. 여튼, 이런 눈으로 대포고냥군은 사회 생활을 시작했고, 컴퓨터 모니터를 뚫어져라 쳐다보는 직업을 갖게 되었고, 시력은 순식간에 바닥으로 치닫았다.

안경이라는 것은 참으로 불편하다. 자다 일어나 안경을 끼기 전 까진 온 세상이 뭔가 핀이 나가 보이고, 추운 겨울 따뜻한 실내로 들어가면 김이 서려 숟가락 울트라맨 마냥 우습기도 하고, 회사에서 격한 하루를 보낼 때면 안경이 코를 짓 눌러 극심한 두통을 가져다 준다. 콘택트 렌즈를 끼라고? 당연히 시도 해 봤지. 대포고냥군은 일반적인 각막 난시가 아닌 수정체 난시라 하드 콘택트렌즈로 교정이 안 된단다. 그렇다면 아마도 각막을 성형하는 라식이나 라섹 같은 수술 역시, 대포고냥군에게 해당되는 것은 아닐듯 하다는 것이 절망. 결론은 안경이라는 것을 인정하기로 했다. 사실 눈이 꽤 좋았을 땐, 안경에 그리 많은 돈을 투자 한 적은 없었던 것 같다. 아니, 좋은 안경 하나 할 돈으로 서너개의 싼 안경을 맞춘다음, 집안 여기저기에 두고 이것 저것 손이 닿는 대로 쓰는 편이였달까. 그런데 이상한 건, 안경을 여러개 맞추면 꼭 맘에 드는 하나만 쓰게 되더라. 그래서 몇 년 전, 태어나서 처음으로 30만원이 넘는 안경을 맞췄다.

Viktor & Rolf 70-0079

Viktor & Rolf 70-0079

빅터앤롤프 70-0079. 프레임은 폴리카보네이트에 템플만 스틸 임에도 – 검정 / 티탄 컬러 조합 덕분에 – 서로 다른 재질 사이의 위화감은 전혀 없다. 지금도 쓰고 있지만 모든 면에서 참으로 만족스러운 안경이다. 무게가 그리 가벼운 편이 아님에도, 핏이 좋아서인지 무게감이 안경의 실제 무게만큼 느껴지지 않는 안경. 안경에겐 악천후와 같은 개기름에 매일 시리어스하게 노출되어도 한 군데도 벗겨지지 않은 도장면은 역시나 일본 생산의 위엄이랄까. 여튼, 이 안경은 대포고냥군에게 안경에 대한 투자를 관대하게 만든 계기이기도 하다. 그러다 지난 달, 징징양과 분당의 모 백화점에서 쇼핑 중, 우연히 이 안경을 보게 된다. 이도타미오 (井戶多美男) 作 T-461.

이도타미오는 일본에서 전통적 방식으로 안경을 제작하는 몇 안 되는 장인 중 하나다. 게다가 크롬과 니켈의 합금으로 주로 치과 재료로 쓰는 산플라티나라는 재료를 쓰는 메탈 프레임 계에선 독보적이라고. 일단 산플라티나는 치과용으로 사용할 만큼 무척 안정적인 소재로 부식이나 변형이 거의 없고 알러지등도 발생하지 않는다. 게다가 소재 자체가 주는 앤틱함이 참 마음에 든다. 작 (作) 시리즈 T-461 은 브러쉬드 실버, 앤틱 실버, 앤틱 골드로 표면처리를 달리한 세가지 제품이 출시 중인데, 일단 골드는 제외하고 실버 모델 둘 중에선 대포고냥군이 구입했던 브러쉬드 실버가 앤틱 실버에 비해서 좀 더 존재감이 있는 느낌이다. 앤틱 실버는 좀 더 자연스럽지만, ‘안경을 썼다’ 는 느낌은 상대적으로 희박하다.

井戶多美男作 T-461

井戶多美男作 T-461

T-461 과 같은 앤틱한 – 김구 선생님 스타일의 – 안경에는 렌즈를 되도록 곡면이 없는 것으로 넣고 싶었다. 뭔가 빛이 렌즈에 반사될 때 평평한 느낌을 원해서 비구면렌즈를 주문했는데, 렌즈를 끼우고 보니 비구면렌즈 라는 것도 완전히 평평하진 않아 좀 아쉽다. 안경 자체는 정. 말. 아름답다. 대포고냥군이 안경 같은 걸 보고, 아무리 맘에 들더라도 계속 사고 싶다거나 한 적이 없었는데 회사에서 인센티브가 나오자 마자 안경을 사 와서 이런 포스팅을 적고 있는 걸 보면… 여튼, 안경에 생애 최대의 지출을 했지만 아주 만족잉 중이다. T-461 은 프레임 자체도 참 가볍지만, 아래 사진과 같이 코 받침이 없이 실리콘 패드가 붙어있다. 평소에 코 눌림으로 인한 두통이 고민이던 차라 가장 마음에 들었던 부분. 게다가 안경 설계 자체가 올려 쓰도록 만든 안경이라 흘러내림도 상대적으로 적을 것 같았다. 템플 끝 처리도 참 세심하다. 마찬가지로 귀에서 흘러내림을 방지하기 위해서 여기에도 실리콘 패드가 붙어있다. 그런데 실리콘패드 부분의 내구성에 대해서는 직접 오래 써 봐야만 알 것 같다. 매장에서도 이 부분에 대해 문의를 했었으나, AS 는 걱정 마시라는 말에…

사실 대포고냥군이 작고 비싼 것들을 좋아하긴 한다. 그런데, 귀차니즘 또한 매우 큰 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이유로 안경 같은 것을 여러개 사 두고, 뭔가 TPO 에 따라 바꿔 끼거나 그러는 것을 참 못하고 싫어하더라. 예전에 빅터앤롤프 안경을 해 오면서, 예전에 끼던 안경에 대한 애착이 남아 비싼 돈 주고 렌즈만 바꿔 왔는데, 맘에 드는 안경이 생기니, 예전 안경은 전- 혀- 쓰지 않게 되더라는. 뭐 대포고냥군이 하고 싶은 말은, 눈이 나빠서 안경이 인생의 동반자가 되어버리신 분이라면, 제대로 된 안경에 많은 돈을 투자하는 것은 ‘죄책감 느낄 일이 아니다.’ 랄까. 뭐 이런 변명을 하는 것 자체가 죄책감이 들기 때문 일지도…

코 받침이 없이 실리콘 패드가 붙어있다

코 받침이 없이 실리콘 패드가 붙어있다

템플 끝 처리도 무척 아름답다

템플 끝 처리도 무척 아름답다

케이스 참 일본스럽다 싶다

케이스 참 일본스럽다 싶다

페르난도 보테로 전 (展)

지난 9월 17일에 이미 끝나버린 페르난도 보테로 전에 갔다가 찍었던 사진을 이제서야 정리해 본다. 이 날, 살짝 비가 내렸었는데 주차를 하고선 차에서 내리니 거짓말 같이 개었다. 공기중에 습기가 가득했지만, 아침 안개속을 걷는 듯 상쾌해서 정말 기분이 좋았던 날로 기억한다. 대포고냥군은 딱히 미술에 대한 안목같은 것은 없으나 각성이랄까 그랬던 계기가 있었다. 몇년 전 시카고 출장길에 우연히 들르게 된 어떤 뮤지엄에서 후기인상파인 피사로 (Pissaro) 전을 보게 되었던 거다. 그림을 감상하던 중, 눈과 머리가 시원해짐을 느꼈다. 머리 속으로 맑은 바람이 부는 느낌이랄까? 그때 이 후로, 미술은 대포고냥군의 머리속에 ‘영혼의 휴식’ 이 되었다.

광화문에서 거의 3년을 직장을 다니며 대한문 앞을 몇 백번도 더 지나 다녔을텐데도 덕수궁 안으로 들어가 보는 것은 이 날이 처음이었다. 석조전을 실제로 보는 것도 처음이었으며, 임금에게 하례를 하던 중화전도 교과서에서나 봤을 뿐이었던 대포고냥군. 역시 고궁은 왠지 심심할듯 한 느낌이지만 막상 가보면 이렇게 좋은 곳도 있구나 싶은 그런 곳이지 않나 싶다. 작품은 1, 2층 에 걸쳐 전시되고 있었는데 1층을 돌아보던 중 전시회 주최측에서 준비한 투어 가이드를 만났다. 미술과 교수 혹은 평론가로 보이는 나이가 지긋한 여자 가이드분의 설명이 어찌나 감칠맛이 나던지 내내 따라다녔다. 보테로가 커왔던 환경, 그의 작품에서 보이는 다양한 상징들, 사물을 더욱 더 거대하게 보이게끔 표현하는 그만의 방식 등 정말 많은 이야기를 들었다. 아마도 이 날 대포고냥군은 잠깐이나마 미술 공부를 좀 해 볼까 하는 생각을 했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덕수궁 미술관에서 열리는 페르난도 보테로전으로 갑니다

티켓을 사고

폼잡는 징징

귀여운척 하는 징징

도는 징징

보테로 고양이야 안녕

석조전 처음 봤습니다

저기네요

나오면서 한 컷

페르난도 보테로 전에서 역시나 최고였던 작품은 ‘꽃 3연작’ 이었다. 거대한 세개의 캔버스에 그린 빨강, 노랑, 파랑색의 꽃. 그의 조국 콜롬비아에 대한 애정을 담은 이 작품은 가까이에선 평평하게 보이지만, 한 걸음만 작품에서 물러서면 마치 튀어 나올것만 같이 입체적이다. 좌우로 움직이면 마치 스테레오 픽쳐를 보는듯한 착각에 빠지게 만든다. 또한 색상 선택은 정말 굉장해서 초 비비드하다는 말으로 밖에 표현이 되지 않는다. 대포고냥군과 도돌미와입후는 이 작품 앞에서 맘껏 ‘영혼의 휴식’ 을 가졌다.

ps. 미술관에 갔던 날인데 어째 이 포스팅은 정통 ‘도돌미’ 특집이 된 듯한 기분은 뭐지?
안경, 지대로 ‘도돌미’

마무리는 역시 홍대

카모메식당 (かもめ食堂), 메가네 (めがね)

사용자 삽입 이미지

사쿠라 아주머니의 메르씨 (Merci) 체조

얼마전 징징양으로부터 영화 두편을 추천받았다. 카모메식당 (かもめ食堂) 과 메가네 (めがね) 라는 일본영화 두 편. 최근 어떤 것에 대해 골똘히 생각하느라 – 카메라 고민 – 무언가에 통 집중을 할 수가 없었던 대포고냥군. 큰 기대 않고 보았던 이 영화 두 편으로 구원을 받은 느낌이라면 과장일까나?

우선, 이 영화 두 편은 감독이 같다. 오기가미나오코 (荻上直子). 게다가 주역배우 둘이 같다. 코바야시사토미 (小林聰美) 와 모타이마사코 (もたいまさこ). 오기가미 감독이 이 두 배우를 편애라고 할 정도로 무척 아껴서 자신의 작품에는 꼭 기용한다는 후문이다. 카모메식당 – 갈매기식당 이라는 뜻 – 에서는 코바야시사토미가 식당 주인, 모타이마사코가 손님으로, 메가네 – 안경 이라는 뜻 – 에서는 거꾸로 코바야시사토미가 펜션을 찾아온 손님으로 등장한다. 오기가미 감독은 두 영화에서 일관된 톤으로 화면을 채워나간다. 단 몇 분만 영화를 보다보면, 왜 이 감독이 이 두 배우를 그렇게 편애하는지를 금방 알아차릴 수 있다. 뭐랄까… 쨍하게 맑은 날, 빨래줄에 흰 빨래들을 널어둔 세제 광고에 나올 것만 같은 배우들 같달까. 무척 담백하고 진지하다가도 피식 웃게 만드는 그런 기분 좋은 캐릭터 들이다.

대포고냥군에게 이 두편의 영화를 본 소감을 한 줄로 요약하라면 ‘오감(五感) 체험 시뮬레이션 영화’ 라고 하겠다. 사실, 스토리는 무시해도 될 정도로 존재감이 없는데다가 – 라고 하면 감독이 기분나쁠래나 – 영화에서 느낄수 있는 것의 대부분을 관객의 상상력의 몫으로 돌려버리기 때문이다. 영화 메가네에서 숨이 멎을 정도로 조심스럽게 단팥을 담고 빙수의 얼음을 갈아 얹을 때, 대포고냥군은 그 맛이 느껴지다 못해 짜증이 날 정도였다. 게다가 이 영화들은 관객들에게 빙수의 맛을 음미할 시간을 너무 오래 준다! 횬다이카드 CF 의 ‘생각해봐’ 라는 타이포가 흐르면서 상어가 뛰어오르는 씬 을 기억하는가? 이와 같이 침묵이 흐르는 시간을 의도적으로 삽입함으로써 관객들에게 극중 캐릭터가 느끼는 오감을 상상력을 동원해서 곰씹을 것을 강요한다.

간만에 본, 너무 맛있고, 너무 따뜻하고, 너무 나른한 영화였다. 특히 메가네에서 내내 나오는 ‘사색’ 이라는 요소는 실제로 어떤 생각을 하는 ‘사색’의 의미에서 차용한 것이 아닌듯 했다. 사색을 한다는 핑계로 영화 내내 멍 때리는 캐릭터들… 봄날에 간혹 정신줄 놓고 꽃향기에 취해서 멍 때릴때의 그 행복한 느낌을 여러분은 아는가? 뇌 한켠이 간질간질 해오는 그 느낌을… 최근 정신적 스트레스를 많이 받으신 분이라면 강추한다. 오기가미 감독의 영화는 한 편으로는 마약에 가깝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