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그 보관물: 영화

늑대아이

'늑대아이 아메와 유키' 가 원제

‘늑대아이 아메와 유키’ 가 원제

시간을 달리는 소녀 (時をかける少女), 섬머워즈 (サマ-ウォ-ズ) 의 감독 호소다마모루 (細田守) 의 신작 애니메이션 ‘늑대아이’. 전 작 들을 즐겁게 감상했었기에, 꽤 기대 중이었다. 그러나 현실은 상영관 거의 없음. 게다가 하루에 딱 2회 상영. 인터넷으로 티켓 예약을 하다 부글부글 뭔가 오기가 생겨버렸다. 그래… 내 생애 처음으로 조조를 보는거다. 해서, 그렇게 토요일 아침 9시로 예약을 하게 된다. 뭔가 오전의 극장은 졸라 조쿤? 사람도 없고, 1층에 있던 스타벅스에서 괜히 크로와상을 먹으며 영화 시간을 기다리기도 하고 말이지… 차도 가져오지 않아서인지 왠지 마음도 가볍다.

사실, 얼마 전에 돌돌미와 무슨 영화를 보러갔다가 우연히 이 애니메이션의 예고편을 보게 되었었는데, 트레일러 상으로는 귀엽고 밝기만 한 그런 애니메이션이라 생각했었다능. 게다가 이번 ‘늑대아이’ 를 보면서 뭔가 호소다마모루 감독의 애니메이션에는 이상한 점이 있다는 것을 발견했다. 늑대아이 초반 스토리 자체는 전혀 슬프거나 하지 않았는데도, 보는 중 내내 울컥울컥 하는거다. 뭔가 이건… 고교 시절, 햇살이 좋은 날에 학교 스탠드에 앉아 멀리 운동장에서 미친듯 축구를 하는 놈들을 보고 있는데, 나는 한 없이 멈춰 있는 듯 한 그런 느낌. (뭔가 망한 것 같은 표현) 아마도 의도 한 것이겠지만, 꽃밭 씬을 비롯하여, 배경들이 매우 정적인 가운데, 작은 요소 – 지나가는 행인들도 작게 표현한다 – 들만이 아주 느리게 움직여 뭔가 애잔한 분위기를 자아낸달까.

강의실에서 만난 늑대인간을 사랑하게 된 하나. 그렇게 태어난 유키와 아메. 인터넷 상에 떠도는 늑대아이의 감상평 중에는, 늑대와 사람 사이에 아이가 생긴다는 설정 자체가 말이 안된다는 비평이 있던데, 그런 인간들에겐 네셔널지오그래픽 같은 다큐만 보며 평생을 살라고 해 주고 싶다. 뭐, 하고 싶었던 말은 이 애니메이션의 주제인 늑대 아이 유키와 아메의 이야기로 중심을 옮기는 데 있어서, 출생 배경 따위에는 신경이 쓰이지 않았을 만큼 자연스러웠다는 것이다. 사실, 호소다마모루 감독이 늑대아이를 통해 말하고자 하는 이야기는 미야자키하야오 감독이 바람계곡의 나우시카 (風の谷の ナウシカ), 천공의 섬 라퓨타 (天空の城ラピュータ), 모노노케히메 (もののけ姫), 이웃의 토토로 (隣のトトロ) 같은 작품에서 보여주고 싶어했던 그것과 많이 닮아 있다. 인간 혹은 문명과 자연의 공존 혹은 인간이 자연을 바라보아야 하는 관점과 같은 것이 늑대아이의 메인 주제이다. 늑대인간은 자연, 하나는 자연을 사랑하는 인간, 아이들은 그 자연과 인간의 매개체이다. 사고로 늑대인간이 주검으로 발견되는 장면에선 옆에 하나에게 가져다 주려고 했던 것 같은 꿩 한마리가가 죽어 있다. 이 장면에서 먹을 것을 찾기 위해 인간이 만든 고속도로를 목숨을 걸고 횡단하다 로드킬로 죽어 나가는 동물들이 떠 올랐던 것은 나의 비약인 것일까. 그 주검의 허망한 눈은 늑대인간이 눈이 아닌 동물의 그것이다. 그 뿐만 아니라, 보호소에 갖혀 아메와 대화하던 생기를 잃은 늑대, 잠시라도 한 눈을 팔면 아이들에게서 드러나는 늑대의 귀와 꼬리. 그리고 그것을 필사적으로 사람들 눈으로 부터 숨기려 하는 하나. 그러나 아메는 자연으로 돌아가고싶어 하며, 유키는 학교에서 순간 드러난 야성으로 친구를 상처입힌다.

산으로 돌아간 아메를 찾아 정신없이 산을 오르는 하나. 그러나 곧 소용없는 일임을 깨닫는다. 인간이나 자연은 모두 본래 있던 곳에 있어야 가장 아름다운 것이라고 호소다마모루 감독은 늑대아이를 통해 이야기한다. 인간이 언제부터 이 지구의 주인이었던가. 서구의 프론티어정신이라는 미명 하에 자연은 인간이 순응시키고 굴복시켜야 할 대상이라 착각해 왔던 것은 아닌지 다시 한번 생각하게 해준, ‘늑대아이’ 를 올해 최고의 영화라고 평하고 싶다.

광해, 왕이 된 남자

king_poster.jpg
예전 다크나이트 라이즈가 성황일 때, 꼭 IMAX 2D로 봐야겠다며 2주 후로 예매를 해 두고서 온라인 커뮤니티들의 게시판 스포를 피해다니느라 힘들었던 것을 생각하면, 스포일러는 안 해야지 싶다. 감상 평에 들어가기 전에 먼저 점수를 주자면, 90점. 하필이면 ‘광해, 왕이 된 남자’ (이하, 광해) 를 봐야지 했던 그 날, 회사 동료들과 영화 이야기를 하다가 이 영화를 봤다는 모 대리께서 ‘스토리 진행이 더디고, 일반 드라마 보는 느낌이었다.’ 라고 평 하셔서, 개인적으로 몹시 걱정 하였으나, 그것은 영화 취향의 차이였을 뿐 기우였다. (미안 백대리…)

사극 – 대포고냥군 기준으로 한복을 입고 나오는 – 을 극장에서 보았던 적이 손에 꼽을 정도 였던 것 같은데, 아마도 2003년의 ‘스캔들 – 조선남녀상열지사’ 와 2005년 개봉이었던 ‘왕의 남자’ 를 본 것이 마지막이었을 듯 싶다. 비록 보진 못했지만 개봉 된 사극이 꽤 있었던 것으로 아는데, 대부분 스릴러, 코미디, 에로(?) 같은 장르인데다 대포고냥군이 사극에 대해 비쥬얼이나 스토리의 완결성 면에서 좀 더 강한 잣대를 들이미는 경향이 있는 것도 사실이다. 사극은 고풍스럽고 좀 진지해야 제 맛이랄까… 흠흠…

우선, 광해를 보기 전에 대포고냥군이 기대했던 포인트는 이병헌과 류승룡의 연기력이었고, 살짝 걱정했던 구석은 중전 역으로 살짝 가볍지 않을까 했던 한효주와, 혹시나 왕이된 남자라는 제목이 조금은 거창했던 탓에, 감독이 조금 스케일에 있어서 욕심을 내지는 않았을까 하는 정도였다. 뭐 이런 기대와 걱정 포인트는 철저히 대포고냥군의 좁아터진 안목 탓이니 비난은 사양한다. 또, ‘광해’ 가 개봉된 후 광해라는 임금이 실제는 어떤 인물이었다는 둥 말들이 많던데, 어차피 영화란 다큐멘터리가 아닌 이상 픽션이니 본 아티클에서 영화의 리얼리티에 대해서는 할 말이 없다. 그러나 영화 자체의 사실성 여부를 떠나 스토리 전개로만 본다면 암살의 위험을 피하기 위해서 왕의 대역을 세운다는 식상한 주제로 시작했으나, 꽤 잘 풀어 나갔다는 느낌이랄까.

‘적절하게 가볍고, 무겁다.’

‘광해’ 는 꽤 밸런스가 좋은 영화다. 관람 전에 사전 정보 하나 없이 가는 걸 좋아하는 대포고냥군은 영화 시작 전에 잔뜩 긴장하고 있었다가 뭐랄까 오히려 가벼워서 안심했달까… 뭔가 제목만 보고선 ‘광해’ 는 어두운 분위기에, 조선의 군주로써의 그의 어깨를 짓누르는 무게감에 집중하는 그런 영화인 줄로만 알았었나보다. 그러나 ‘광해’ 는 결코 무겁지 않았다. 그렇다고 경박하지도 않았으며, 영상미도 매우 훌륭했다. 광해와 하선을 연기 할 때, 완전히 다른 사람 같았던 이병헌의 연기는 소름 끼칠 정도로 인상 깊었으며 허균 역의 류승룡 아저씨와 조내관 역의 장광 아저씨의 깨알같은 연기에 영화를 보는 내내 참 많이 웃었던 기억이다. 또, 영화에 얹혀 있는 러브라인은 매우 단순하지만 꽤 로맨틱하게 보이는데, 관람 후엔 중전이 한효주였기에 이런 느낌이 가능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까지 들었으니 나도 꽤 편견이 심한 사람인 듯 싶다. 이렇게 적고 보니, ‘광해’는 스토리 보다는 뛰어난 배우들의 연기력으로 –  po이병헌wer – 끌어간 영화였다 싶다.

뭔가 영화를 본 후에, 인터넷 상의 게시판을 보니 광해의 가슴 상처가 처음이랑 다르다는 말이나 감독이 원래 원했던 결말은 개봉판이랑 다르다는 등 ‘석연치 않은 결말’ 이라 평하는 사람들이 많던데, 뭐 개인적으로는 개봉판의 결말도 단순하니 그리 나쁘지 않다는 생각이다. 나이가 드니 뭔가 이지한 것들이 좋아진다는. 뭔가 개콘 ‘불편한 진실’ 의 김기리식 유머가 점점 좋아지는 것 처럼 말이다.

말할 수 없는 비밀

사용자 삽입 이미지

틴에이져 폭렬 염장 무비 ‘말할 수 없는 비밀’

실은 직장의 모 과장님으로부터 얼마 전까지 집요하게 추천을 받고있었던 영화 ‘말할 수 없는 비밀’. 설 연휴가 끝나갈 무렵, 징징양과 영화나 한편 볼까 하다가 급 관람하게 되었다. 스토리는 커녕 어떤 쟝르의 영화인지도 전혀 모르는 상태에서 본 영화다. 사실, 어느나라 영화인지도 몰랐을 뿐더러 심지어 드라마 이름인줄 알았다는;;; 각설하고, 먼저 간단하게 영화 소개부터 하겠다.

제목                     : 말할 수 없는 비밀 (원제 : 不能說的秘密)
감독, 남 주인공     : 죄다 주걸륜 (周杰倫) – 상륜역
여 주인공             : 계륜미 – 샤오위역
쟝르                     : 드라마, 판타지

결론 부터 말하자면, 기대 이상의 영화였다. 10점 만점에 8점 준다. 처음 영화 시작할 때 대포고냥군은 ‘짱개 삘’ 이라는 둥, ‘저 얼굴이 고삐리 얼굴이냐’ 는 둥 조낸 무시때려주시면서 투덜댔으나 10분이 막 지난 시점에 이르러 열라 몰입하고 있는 자신을 발견하고 깊이 반성했다. 일단, 남녀 주인공들의 설정이 이질감 없이 영화에 몰입하게끔 하고있다. 게다가 초반에 나오는 상륜과 피아노왕자님 (응?) 의 피아노 배틀 Scene은 아주아주 멋지구나. 대포고냥군은 엔딩크레딧이 올라가기 10분 전까지만 해도 이 영화가 왜 빤따지물인지 몰랐고, 그냥 주인공 둘이 뿜어내는 염장의 포스에 온몸이 오그라들고 있었을 뿐이었다. 그러나 마지막 10분간의 반전은 틴에이져 폭렬 염장물을 빤따지로 탈바꿈시킨다. 약간은 황당하다 싶지만, ‘말도 안돼! 저게 뭐냐고!’ 이런건 절대 아니다. 대포고냥군 나름, 진짜로 몰입했다는… 같이 보았던 징징양은 살짝 눈물도…

사용자 삽입 이미지

이런 자세로 말이지…

여튼, 감성적인 대포고냥군 간만에 잼있게 봤다. 여기에 스토리를 적고 싶지만, 아직 상영중인 영화이기에 그냥 보시라고 말하고 싶다. 주걸륜이라는 배우 – 아니, 감독인가? – 를 이 영화로 처음 봤지만 나름 괜찮은 배우인듯하다. 얘가 출연한다는 ‘쿵푸 덩크’ 가 곧 개봉한다는데, 그것도 내 봐주마.
ps. 이 영화를 보면 피아노를 잘 치고 싶어진다.

라따뚜이 (Ratatouille)

사용자 삽입 이미지

한국판 포스터 ‘라따뚜이’ 와 일본판 ‘레미의 맛있는 레스토랑’

최근에 영화계의 이슈라면 심형래 감독의 디워 (D-War) 관련 이야기들 뿐인듯 하다. 다들 뭐가 그리 할 말들이 많은지…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모여 사는 세상에 이런 생각을 가진 사람도 있고, 저런 생각을 가진 사람도 있을 수 있는거지, 자기 생각과 다르다고 피 터지게 싸우고 비난하는 꼴을 보고 있자니, 짜증이 절로 솟구친다. 애국심이 어쩌고 하며 파시즘을 펼치는 옹호론자나, 쓰레기 영화라고 비난하는 비평가나 같은 수준일 뿐이다. 물어보고싶다. ‘그렇게 똑똑하면 왜 한국에 있는데? 밥 벌이는 하냐?’ 고… 물론 대포고냥군은 이런 논쟁에는 관심도 없지만 말이다. 친구중 한 넘이 ‘그래도 한번 봐줘야 되는 것 아니냐’ 라고 했다. 단언코 나는 디워를 볼 의향이 없다. 그리고 이건 영화가 좋고 나쁘고를 떠나 나의 영화 선택에 대한 판단일 뿐이다.

세상이 디워 논란에 술렁일 때, 7월 28일 픽사 (Pixar) – 디즈니 (Disney) 의 라따뚜이 (Ratatouille) 가 개봉했다. 8월 초순 기준 국내 유명 영화예매사이트의 예매순위 3, 4위에 랭크되었고, 대부분의 영화관련 미디어에서 이 작품에 대하여 평점 10 점 만점에 9 점 이상을 부여했다. 그런데 8월 중순도 되기 전, 많은 극장들이 라따뚜이를 내리기 시작한다. 지금은 디지털 영화관은 고사하고 일반 영화관에서도 라따뚜이를 구경하기 힘들다. 극장입장에선 아무래도 이슈화가 된 – 디워 같은 – 영화를 많이 올리는 것이 이익. 솔직히 큰 기대없이 본 영화가 이렇게 까지 맘에 들었던 적이 그다지 잦은 일은 아니기에 많이 아쉬운 현상이라 하겠다. 거의 마지막 디지털 상영으로 라따뚜이를 본 대포고냥군의 상영 후 감상은 ‘단순한 스토리에 이렇게 몰입할 수 있어서 즐겁다’ 정도로 설명될 수 있을까… 스토리는 아주 쉽다. ‘요리에 재능이 있는 생쥐 래미 – 주인공 – 가 파리의 유명한 레스토랑에서 꿈을 이룬다’ 라는 이야기. 쉬운 이야기 임에도, 한 치의 허술함이 없다. 이것은 어쩌면 픽사의 애니매이션 기술에 관한 이슈일지도 모르지만, 어떤 상황에서도 등장인물들의 표정, 몸짓, 대사에서 어색함이라곤 발견할 수 없다.

여태껏 픽사 – 디즈니 진영과  드림웍스가 영화 팬들에게 선보인 작품들은 기대를 저버리지 않았다. 픽사 – 디즈니 에서는 토이스토리를 시작으로 벅스라이프, 몬스터주식회사, 니모를 찾아서, 인크레더블, 카 등등 을… 드림웍스에선 슈렉 시리즈 하나만 예로 들어도 충분할 것 같다. 대포고냥군은 쾌락주의당의 멤버라 솔직히 보고 행복하고 좋으면 좋은 영화라 생각한다. 6,000원 짜리 영화를 보고 거기서 숨겨진 상징을 찾고 의미심장한 시사점을 발견해야만 속이 시원한 그런 비평가는 아니라는 이야기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영화는 하일라이트 씬 몇 분으로는 좋은 영화가 절대 될 수 없다는 점이다. 어떤 영화의 홍보문구처럼 ‘마지막 8분이 압권이다’ 따위의 문구는 관객에게 두시간동안 자다가 8분 남았을 때 일어나라는 이야기나 매 한 가지 아닌가? 이런 점에서 ‘라따뚜이’는 내게 좋은 영화였다.

ps. 꼭 디지털 상영관에서 보거나 디지털 소스로 보는게 좋다.
생쥐 털 날리는 것이 예술이다.

영화 괴물과 한국 영화관객의 수준?

나름 호화 캐스팅!

약 3주만에 1천 1백만 관객 동원. 4주 연속 박스오피스 1위. 매 주말이 지날 때마다 영화 괴물은 새로운 기록을 경신 중이고, 매스컴은 들썩대고 있다. 사실 대포고냥군은 지난 달에 이 영화를 보았다. 그럼에도, 이제서야 글을 쓰는건 스포일러가 포함된 글을 썼다가 너 때문에 재미없었잖아! 라는 원망을 피하기 위해서이고, 이 정도로 센세이션을 일으킨 미디어는 한번쯤 돈내고 봐 줄만 하다 라는 생각에서 였으니, 나름대로 대포고냥군의 배려?

자자자… 이미 괴물을 보신분만 아래로 내리시는거다.

‘영화 괴물에 열광하면 수준 미달?’

영화 괴물을 보고 영화관을 나서는 사람들의 평은 대체로 두가지로 요약된다. 절대 대다수는 너무 잼있었다 이고, 그게 아니라면 꽤 괜찮긴 하지만 뭔가 찝찝… 이라는 반응이다. 개봉 한 달이 지난 지금, 이제는 포털사이트에서 괴물이라고 치기만 해도 수많은 영화평들이 검색된다. 대체로 영화평론가들은 괴물 = 한국의 부조리 라는 견지에서 해석하고 있으며, 오히려 평론의 주제는 괴물이 무섭다 가 아니라, 봉감독은 운동권이다 라는 것으로 결론짓고 있다. 물론 평론 아래에 달린 리플은… 대체로 무슨 개소리냐… 이런 훌륭한 영화를! 이라는 내용으로 도배되고 있지만…

얼마 전, 김기덕 감독이 괴물을 지칭하며 한국 영화 관객의 수준을 논하는 바람에 논란이 되었던 일이 있었는데, 대포고냥군도 김기덕 감독의 의견에 일부 동의하는 부분이 있다. 문제는 김 감독의 표현이 너무 과격했다는 것인데, 김 감독 그 자신도 쓰레기같은 영화를 보러오는 수준 낮은 관객들이 내주는 돈으로 먹고사는 사람일 뿐이라는 것을 잊은 것이 문제라면 문제다. 그리고 한편으로는 괴물은 이렇게 추켜세워주면서 자기의 영화는 왜 홀대하느냐 라는 유치한 투정으로 들리기도 한다.

대포고냥군이 보기에도 영화 괴물은 단순한 괴수 영화는 아니다. 영화 서두에서 미국인인지 아닌지는 불 명확하지만 영어를 쓰는 사람이 포르말린을 한강으로 흘려보내라고 지시하는 내용 이후로, 있지도 않은 바이러스 소동에 에이젼트 옐로우 (Agent Yellow) 라는 대 화학전 장비 까지 개입시키는 미국, 무기력하게 미국의 개입에 전전긍긍하는 한국 정부, 박해일이 괴물을 향해 날리는 화염병까지 영화 전반에 걸쳐 반미 코드가 가득하다. 심지어 어떤 평론가들은 괴물에게 납치되는 현서 (고아성) 의 이름에서 미군의 장갑차에 깔려 죽은 효순의 흔적을 이야기하기도 한다. 뭔가 곳곳에 봉감독이 말하고 싶었던 메시지가 널려있는 느낌이긴 하지만 희미하다.

한 사회조사기관에서 ‘영화 괴물은 반미영화인가?’ 라는 주제로 앙케이트를 실시하였는데, 네티즌들의 64%는 ‘영화 괴물은 반미영화가 아니다’ 라고 대답했다고 한다. 뭐 실제로 괴물은 반미영화라고 하기에는 약한 면이 없지않다. 봉감독 비겁해! 하지만 봉준호감독은 흥행을 어느정도 고려한 수준에서 분명 한국이라는 사회에 던지고 싶었던 메시지를 영화 곳곳에 배치한 것은 분명하다. 그리고 대 다수의 관객들은 그 메시지를 이해 못했거나 대수롭지 않게 지나쳤다. 감독의 영화제작의 기교가 모자라서 라기 보단, 괴물이 반미영화로 포장되길 바라지 않았을 수도 있다.

대포고냥군의 전공이기도 한 사회학에서는, 똑똑한 엘리트 집단과 대중 (Mass) 으로 계층을 분리시켜 해석하고 있으며 대중들이 만들어 내는 문화는 엘리트 문화의 싸고 조잡한 카피일 뿐이라고 말한다. 그 사회 구성원의 평균에 맞춘 대중문화는 지식층에서 논하는 문화에 비하여 저속하고 싸구려일 수 밖에 없다. 김기덕 감독의 말 처럼 한국의 영화 관객들은 수준이 낮아서 그가 영혼을 불어넣은 – 해외에선 각광을 받은 –  작품의 본질을 파악할 만한 레벨이 안되는 것은 사실일지 모른다. 하지만 그는 영화 라는 것 자체가 대중문화의 일부분이라는 것을 잊고 있다. 자신이 지금껏 만들고 있던 영화라는 것 자체가 저속하고 수준이 낮은 대중을 위한 문화의 일부분이라는 것을 간과하고 있는 것이거나 인정하고 싶지 않은 것이다. 그는 문화엘리트가 되고싶은 대중일 뿐이다. 그게 아니라면 이번에 개봉하는 ‘하루’의 관객수가 20만이 되면 한국 시장을 뜨네 마네 하는 그런 소리를 하지 말든가!

문화는 그 사회의 정신이며, 사회가 하루 밤 사이에 변할 수 없듯이 문화도 마찬가지이다. 문화를 매개로 밥벌이를 하는 사람들은 그 사회의 문화수준을 인정해야 한다. 김기덕 감독이 만일에 천재일지라도 그 사회가 그 천재를 인정하지 않으면 단지 센스 없는 미치광이일 뿐일테니까…

투사부일체

너네들… 이게 웃기냐? 웃겨?

한 마디로 요약하겠다. ‘웃기긴 개뿔’ 영화관에서 돈주고 봤으면 아마 나오면서 돌아버릴뻔 했을게다… 왼쪽의 포스터를 보라. ‘우리를 기다리는 저들을 보라. 어서가서 웃기자?’ 저렇게 대놓고 웃긴다라는 영화 중에 웃기는 영화 없다는 것을 왜 몰랐을까… 제작자가 만들어놓고 보니 안팔릴것 같았나 보다.

저질에다, 유치하고, 게다가 내가 싫어하는 조폭 까지 나온다. 최악이다… 그리고 조폭두목이 교생으로 간다? 무리한 설정이라고 생각하지 않는가? 생각만 해도 싼티가 철철 넘친다. 게다가, 섹슈얼리티? 좋다… 하지만 단순한 음담패설만 가득한 것이 문제다.  전(前) 편을 답습하고 있을 뿐 아니라, 시나리오를 쓴 넘도 돈 맛을 보고 맛이 갔는지 눈에 뵈는것 없이 펜을 놀렸다는게 문제다.

아마, 올해 초에 ‘일년동안 내가 본 영화를 모두 블로그에 남겨야지…’ 라고 했던 결심이 아녔더라면 절대 신경도 안썼을 영화다. 영화에 출연하는 배우들도 눈 앞의 한 푼의 돈에 눈이 멀것이 아니라, 자신이 출연하는 한 편의 영화때문에 앞으로 이미지가 어떻게 될 것인가 정도는 생각했으면 한다.

평점을 말하라고? 별 다섯개 만점에 없다! 졸라 싼티나는 영화. 돈과 시간이 썩어나는 사람이 아니면 절대 보지말라. DVD 대여비조차 아깝다.

싸움의기술

1261525955.jpg

바로 이전에 썼던 Article 인 ‘사랑에 미치다’ 를 본 날, 연속으로 본 영화였음에도 불구, 이렇게 늦게 쓴 것은… 조금이라도 더 ‘사랑에 미치다’를 메인에 떠 있게 하고싶었고, 이 영화가 그다지 비중이 없기 때문이다. 개봉전에도 티져광고로 많이 접해서 어떤 내용인지는 다 알고 봤던 영화다. 핵심 키워드 싸움의 기술, 고삐리, 은둔고수 백윤식. 이 것으로 스토리 충분히 상상이가지 않는지? 딴 요소에 대해선 도저히 쓸 말이 없다. (뭐 그렇다고 영화도 아니야! 뭐 그런 뜻은 아니다. 뻔 하다는 이야기다.)

간단하게 끝내자! 내가 좋아하는 요점정리 시간이다.

1. 백윤식 카리스마 – 여전히 카리스마있다. 목소리, 말투가 카리스마의 80%을 차지하는 듯. 백윤식 빠들은 꼭 보라.
2. 무식하게 싸우면 이긴다! – 이 영화가 주는 시사점은 싸움의 기술이란 별거 없다. 눈알이 딸려나올 걱정 말고 나무 젓가락 으로 쑤시고 뼈 튀어나오는거 걱정말고 팔 비틀어라! 인듯.
3. 조폭은 제발… – 한국영화, 특히 코미디 영화에 제발 조폭 좀 빼주면 안되겠니? 윤식아! 안되겠니?
4. 공고 비하 – 공고 출신이 아니라 정확하게는 모르지만 무슨 학교가 무법지대로 묘사된다. 정말 공고에선 애들끼리 맞짱뜨면 몽키 스패너로 후리고, 드라이버로 쑤시는 분위기인가?
5. 최여진 좋아! – 최여진이 누구냐고? 예전에 미안하다 사랑한다 에서 소지섭을 배신하고 시집가는 그 처자다. 참 묘하게 생긴 여햏이라 좋아한다. 그래도 모르겠다는 분들은 네이버에서 검색하시라.

ps. 내가 영화평론가가 될 수 없는 가장 큰 이유는 해피엔딩을 넘 좋아한다는 것이다. 백윤식 이 아저씨 안죽고 살았다! (스포일러일까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