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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PI 의 초겨울

11월이 되자마자 날이 급 추워졌다. 올해 3월 말에 이사를 와 반년 가량 살아본 바로는, 분당은 서울의 평균온도보다 2-3도 낮은듯 하고, OPI 는 거기서 2-3도가 더 낮은듯. 퇴근길에 차 윈도우를 열어둔 채로 운전해 오다보면, 분당 접경을 통과하자마자 온도가 떨어지는 것이 확 느껴진다. 왜 시골은 다 추운건지… 이 동네에서 겪을 첫 겨울이라 벌써부터 걱정되기 시작한다. 내년에 ‘일 년의 반이 눈으로 덮혀있는 곳으로 밝혀져…’ 뭐 그런 포스팅을 쓰게 될 지도… 그러고 보면, 상도동 시절에는 중앙난방이라 추운걸 전혀 모르고 지냈었던 것 같다. 대포고냥군과 징징양이 출근하고 난 빈 집에서 고양이들만 호강하던 시절이었다는. 동계 난방비가 매달 20만원 가량 나왔었던 것 같은데, 그 중에 80 퍼센트 이상은 울집 냥님들이 누리셨다. 여튼, OPI 로 이사오면서 냥님들은 좋은 시절은 다 갔다고 보면 됨. 가스보일러로 바뀌니, 자연히 옷을 껴 입게 되고, 난방이 줄어들고 있다.

퇴근해서 보일러를 켜면, 씽크대 아래 고양이들이 몰린다. 보일러로부터 각 방으로 연결되는 온수 라인이 나눠지는 포인트가 씽크대 아래인데, 가장 빨리 데워지고 가장 핫 한 (!) 장소랄까. 어떻게 고양이들은 따뜻한 곳을 이리 잘 찾아내는 건지 아주 딩굴딩굴 난리… 다음에 이사를 가게 되면, 온돌 고양이들을 위해 지역난방되는 분당으로 가는걸로… 그래도 너네는 털이 있잖니…흠흠-

아니 얘네들은 왜 다 씽크대 아래에서 이러고 있는거임-

아니 얘네들은 왜 다 씽크대 아래에서 이러고 있는거임-

아빠도 여기 누워보삼-

아빠도 여기 누워보삼-

우키, 이미 melt down-

우키, 이미 melt down-

사실 여기가 제일 명당, 지붕도 있음 -

사실 여기가 제일 명당, 지붕도 있음 –

 

팩토리 670

이런 곳에 나의 팩토리 670 이 있을리 없...

이런 곳에 나의 팩토리 670 이 있을리 없…

우리 고장의 자랑스러운 카페, 팩토리 670 으로 가 보자. 네비게이션이 안내하는 산길로 – 정확히는 깡촌 길 – 5분을 달렸지만 카페 같은 건 보일 생각을 하지 않는다. 이런 곳에 카페같은 것이 있을리가 없잖아!!! 라고 외치려던 순간 웬 공장이 나타난다. 읭? 한국커피? 이름은 다르지만, 일단 커피는 커피니 한 번 가보기로 한다. 직전에 보이는 ‘수레실 가든’ 도 ‘우리 고장의 자랑스러운 삽겹살 집’ 이니 참고 바라며, 나중에 꼭 한 번 다루도록 하겠다. 건물에 도달하기 전에 주차장이 보였는데 매우매우 가파른 경사로에서 ‘경기도 켄블락’ 징징양은 바퀴에 연기 한번 내 주시는 신공을 발휘. 그런데 뭔가 비포장 주차장인데다가 분위기가 이상하다. 아무래도 여기가 원래 주차장이 아닌듯. 여긴 직원 주차장인가…?

직원 주차장인...듯?

직원 주차장인…듯?

여기가 정면-

여기가 정면-

그러하다. 공장 건물을 따라 힘겹게 돌아나오니, 이러한 신세계가! 한국커피는 얼굴만 청보라 색이었어! 건물 앞에는 조그맣지만 애들이 좋아할 만한 잔디밭도 있고 벤치도 있고 그렇다. 저기 건물 1층이 아마도 팩토리 670 인듯 싶다. 솔직히 뭐, 여기까지 왔을 때도 대포고냥군은 별 감흥 없었음. 입구로 가까이 다가가니 의외로 사람이 많다. 허헐- 이런 깡촌에 왠 사람들이 이리 많음? 나중에 징징양과 추리해 본 바로는, 팩토리 670 으로 들어오는 길목에 좀 큰 교회가 있었는데, 이 날이 일요일이라 예배를 보고 들르는 코스가 아니었나 싶다. 입구 유리문에 영업시간이 보인다. 오전 10시 부터 저녁 9시까지. 그런데, 동절기 평일에는 오후 6시에 마감. 얼마 전, 회사 회식을 팩토리 670 옆에 있는 수레실 가든에서 할까 계획했던 적이 있었는데, 고기를 먹고 팩토리 670에서 커피를 마시는 완벽한 코스를 그려보았으나, 오후 6시에 마감이라는 이야길 듣고 좌절했던 기억이 난다. 여튼, 한국커피의 주 비즈니스 모델은 카페가 아니니깐용.

10:00 AM - 09:00 PM

10:00 AM – 09:00 PM

높은 천장 매우 훈늉휸늉함미다-

높은 천장 매우 훈늉휸늉함미다-

기둥도 막 H-beam 으로 만들어 놓고요- 좋슴

기둥도 막 H-beam 으로 만들어 놓고요- 좋슴

안쪽 공간도 아주 넓다

안쪽 공간도 아주 넓다

공장공장한 조명들

공장공장한 조명들

팩토리 670의 내부는 아주 넓다. 사실, 처음부터 카페 공간이 이리 넓었던 것은 아니라고. 현재의 이 모습도 최근 리뉴얼 해서 다시 오픈한 결과란다. 이름 처럼 공장의 분위기를 그대로 살린 인테리어가 아주 맘에 든다. 조립식 벽체와 낮은 채도의 페인트, 콘크리트에 투명 에폭시를 광택처리한 바닥 좋아좋아. 입구와 반대쪽의 천장 까지 이어진 높다란 채광창도 멋지다. 우리가 방문했을 때만 해도, 날씨가 꽤 쌀쌀해서 난방을 하고 있었는데, 구석에 놓여있던 대형 난방기에 대포고냥군과 징징양은 급 관심. (아래 로스팅기가 보이는 사진 참조) Yanmar 라는 브랜드의 난방기였는데, 뭔가 D&D 스러운 저런 디자인 좋다. 나중에 검색해 봤더니, 선박용 엔진, 초 대형 난방기등을 만드는 일본 회사. 역시 우리는 기계 덕인것이다. 공대 기계과를 갔어야 하나…

카운터 옆에는 꾸밈없는 담백한 빵들을 팔고 있다

카운터 옆에는 꾸밈없는 담백한 빵들을 팔고 있다

그 맞은편에는 각종 커피기구들과 로스팅한 whole bean 을 준비

그 맞은편에는 각종 커피기구들과 로스팅한 whole bean 을 준비

먹고 싶은 빵을 집어들고 이렇게 줄을 서서 커피를 주문

먹고 싶은 빵을 집어들고 이렇게 줄을 서서 커피를 주문

대포고냥군은 라떼를, 옆의 크림브륄레도-

대포고냥군은 라떼를, 옆의 크림브륄레도-

치즈빵 강추

치즈빵 강추

여기서 팔고 있는 거칠거칠 달지 않은 빵들도 참 맛있다. 처음엔 크림브륄레를, 두 번째 커피 리필을 받으면서 한 주문엔 치즈빵을 사 보았는데, 질리지 않고 계속 먹을 수 있다. 배가 고픈것도 아니었는데 말이다. 아 참, 여긴 모든 커피메뉴에 일반 아메리카노 리필 한 번이 무료다. 내가 주문했던 6,700원 짜리 라떼가 처음엔 좀 비싸다 싶었는데, 리필을 받아 마시고 나니 그런 것도 아니다 싶다. 원래 주문시에 받았던 영수증은 버리지 말고 챙겨두자. 들고 카운터로 가면, 표시를 하고서 커피를 내 준다. 처음엔, 빈 자리가 없어서 커피를 준비하는 주방 옆의 높은 스툴에 앉아 있었는데 용모가 단정한 바리스타 총각이 무심한듯 쉬크하게 커피 어떠냐고 물어본다. 객관적인 커피맛도 아주 좋았지만, 나름 본인이 내린 커피의 맛에 대해서 반응을 묻는것도 카페에 들른 손님 입장으로썬 기분 좋은 일이다. 카운터에서 주문 받을 때도 그렇다. 마침 예가체프가 떨어졌다며, 내가 원하는 맛을 바탕으로 이런저런 커피를 추천해 준다. 좋은 서비스다…

라떼는 아주 훌륭하다. 우유와 에소의 비율도 아주 적절하고 타격감도 좋다. 게다가 라떼를 내줄 때, 흔하다면 흔한 리프를 라떼아트로 만들어주는데, 솔직히 신쥬쿠의 스트리머커피 이 후, 한국에서 본 것들 중엔 최고로 꼽고 싶다. 물론, 스트리머커피와의 비교는 어렵지만 말이다. 띠의 갯수도 많을 뿐더러 크레마와의 구분도 좋다능.

징징양은 이날 일을 산처럼 싸 들고 왔다

징징양은 이날 일을 산처럼 싸 들고 왔다

잠깐 열린 로스팅 실의 거대 로스팅머신

잠깐 열린 로스팅 실의 거대 로스팅머신

이 날은 늦게까지 있었는데, 해가 지니 더 분위기 좋음

이 날은 늦게까지 있었는데, 해가 지니 더 분위기 좋음

처음 들어왔을 땐 사람이 무척 많았는데, 점심시간을 지나고 나니, 금세 한적해져 버렸다. 역시 교회에서 온 사람들 이었던 것 같음. 뭔가 넓고 천정이 높고 한적한 그런 공간에서의 휴식은 아른아른 하달까 그런 느낌이 있다. 게다가 사람의 인적도 없는 이 깡촌에 이런 멋진 카페라니… 팩토리 670에 있는 내내 세상과 단절된 다른 세상에 있는 듯 했다. OPI 의 자랑, 팩토리 670. 우리 집에 방문하시면 차로 데려다 드리고, 커피도 사 드려요. (이런 서비스는 세상 어디에도 없다.)

* 아쉬운 소식 하나
주문시에 포인트적립을 위해 전화번호를 남기는데, 그 번호로 이런저런 안내를 문자로 보내주곤 했습니다.
얼마 전, 징징양에게 문자가 왔는데, 뭔가 더 좋은 서비스를 위해 잠정 휴업을 한다고 하네요.
리뉴얼 한 지 얼마 되지 않아, 아예 문을 닫는 것 같진 않으니 우리 모두 기다려 보도록 해요.

다시 오겠다 팩토리 670!

다시 오겠다 팩토리 670!

우리집이 생겼어요

올ㅋ

올ㅋ

12년 전, 대포고냥군은 급 돈을 벌어야겠다 싶어, 잘 다니던 대학원을 때려치고 서울로 올라오게 된다. 친한 친구가 살고 있던 동네라는 이유로 첫 사회생활을 봉천동에서 시작. 철 모르던 그 땐, 좁은 골목골목 원룸으로 빼꼭히 들어찬 그 동네가 영화에서 가난한 흑형들이 막 돈 뺏고 하는 그런 슬럼같은 곳이라 생각했다. – 세월이 지나고 생각해보면, 딱히 봉천동이란 동네가 저렴한 곳이 아니었지 말입니다… 여튼, 이 후에도 그렇게 홍대 앞 등으로 전세를 전전하다 징징이라는 뛰어난 미모의 여자와 결혼을 하게 되는데, 문장의 흐름과는 전혀 관계 없이 신혼집도 전세. 그렇다. 서울에서 집을 사는 건 쉬운 일이 아니었던 것이다. 다음 이사 갈 땐 꼭 내 집을 마련하겠다며 다짐한 대포고냥군이 2년 후 옮긴 메종드상도도 전세. 털썩…

뭐, 그래도 아름다운 언덕의 꽃 같았던 신혼집, ‘신창체육관’ 과 낡았지만 따뜻했던 고양이 천국, ‘메종드상도’ 를 만나고 잘 지냈던 것도 진정 행운이었다. 그런데 전세라는 것이 집 값 떨어질 걱정 없다는 장점도 있지만, 두 해 마다 갱신해야하는 계약과 이사의 부담, 그리고 결정적으로 부동산경기가 하락하면서 하루하루 고가를 갱신하는 전세금의 압박이 스트레스였달까. 게다가 뭔가 집을 깔끔하게 꾸미고 살고 싶어도, 돈이 아깝다는 것이 전셋집의 단점 되시겠다. 그래서 징징과 대포고냥군은 결정했다.

‘그래. 집을 사자.’

일단, 서울시내에선 30평대 아파트를 사는건 자금 문제로 포기. 직장도 분당이고 하니, 근처로 알아 보기로. 그런데 많이 내렸다곤 하지만 분당구는 여전히 조금 부담이네… 으음… 조금만 더 나가볼까 하다가 눈에 들어온 곳이 여기 OPI 다. 분당 서현까지 차로 15분, 대중교통으로는 20분이면 충분하다. 녹물을 하도 먹어서 몸에 자석이 붙을 것 같았던 25년 넘은 메종드상도에 비하면 완전 새 아파트인데다, 칸칸 나뉘어 있는 지하주차장도 생겼다. 부동산에서 쓴 계약서를 들고 나오는데 징징이 우리 집이 생겼다며 울컥했다. 이런 초 미녀를 지금껏 전셋집에… 미안 올ㅋ

이사 하는 과정에서, 계약금을 미리 돌려주지 않았던 메종드상도 주인과의 트러블, 이사 당일날 바닥 공사 문제, 우리 털고양이들 넷을 어디다 맡겨야 할지 정도의 고민을 한 것 외엔 아주아주 원만원만하게 처리했다. 한 달이 지난 지금도, 징징은 아직도 이 집이 우리 집이라는 것이 실감나지 않는단다. 언제까지 여기 살진 모르지만, 처음으로 마련한 우리 집, 예쁘게 해 놓고 살자고 그랬다. ‘내래 꼭 초 부자가 되서리, 징징에미나이를 금방석에 앉혀 주갔어!’ 했다. 뭔가 인생의 시즌2가 열린듯.