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별 글 목록: 2009년 12월월

눈오던 날

귀여운 배바둥 발자국

오전부터 눈이 내리기 시작하더니, 오후 세시 쯤에는 온통 하얀 세상이 되어버렸다. 베란다의 블라인드를 걷어주었더니 눈을 처음 보는 바둥이와 우키는 창문에 붙어서 완전 정신줄을 놓았다. 대포고냥군도 창가에서 담배를 피다가 10센티는 쌓였을 것 같은 아파트 주차장을 보고선 갑자기 발자국을 찍어보고 싶어졌다. 맨날 철 없이 바깥에 나가고만 싶어하는 바둥이에게 겨울의 살벌함을 좀 알게 해주고도 싶었고 말이다. 도돌미와입후랑 패딩잠바를 껴입고, 고양이들에게 몸줄을 채우는데, 구름이는 ‘추운데 거길 왜 나가-‘ 나며 나가길 거부한다. 얘는 나이 먹어 갈수록 점점 할매같다. 결국 도돌미와입후와 바둥, 우키만 눈 구경하러 고고-

아니, 몇 걸음 걸었다고 후덜덜이세요?

어으 추워- 절로 꼬리가 부푸네-

오빠! 바둥이가 눈 밭에서 노숙자 모드 하려고 해-

엄마, 오늘의 눈 체험으로 집구석의 소중함을 새삼 깨닫게 된 것 같아요-

덧글 1.
결국, 애들이 너무 추워해서 10분도 안되어 다시 집으로 들어왔다능-
너네 그 천연 모피 어디다 쓰는거냐 응? 응?
사실, 겨울 고양이는 배구름인데 집에서 잠이나 쳐 자고 말이다.
(참고) 배구름은 발바닥까지 털이 나 있어서 눈 밭에서도 발이 시렵지 않아요-

덧글 2.
역시 눈 밭에서의 확산광은 보드랍구나-
담주에 스키장이나 갈까…

아이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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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 시간 기다리고 기다려왔던 디바이스라 어쩌면 당연한 지름일지도 모르겠지만, 대포고냥군과 도돌미와입후는 KT 예판 때 아이폰을 구매했다. 배송이 예정보다 늦어진 것은 그렇다 치고, 개통까지 늦어지는 바람에 통화도 되지 않는 아이폰을 일 주일동안 ‘아이팟 터치’ 마냥 들고 다녔다. 캐리어에 SHOW 라고 뜨고 SMS로 웰컴 메시지가 도착했을 때도 왠지 해외 아이폰 리뷰를 보고있는 것 마냥 실감이 나지 않았던, ‘이거 진짜 메시지?’ 이런 느낌? 여튼 개통한지 3주가 지난 지금도 아이폰을 만지작거리고 있으면 마냥 좋다.

한국에서의 아이폰 런칭 후 3주, 소문에 의하면 17만대가 판매되고 15만대가 개통되었단다. 엄청난 열기다. KT 역시도 이 정도의 반응은 예상 못했던 눈치다. 이런 아이폰 열풍 속에 삼성, 엘지 등 한국의 스마트폰 제조업체들은 KT가 아이폰에 지급한 전례유무한 보조금의 규모를 이유로 완전 삐쳐있는듯 하고, 대기업의 홍보실 직원 같은 듣보잡 IT 기자들은 웃기지도 않은 것들로 꼬투리를 잡아 아이폰 까기에 열중하고 있다.

‘아이폰 열풍’, 10대는 ‘시큰둥’

이런 기사가 있더라. 더 잼있는건 이 기사 아래에 달린 리플들이다.

BMW 528, 10대는 시큰둥.
포르쉐 파나메라 출시, 10대는 시큰둥.
막걸리 열풍, 10대는 시큰둥.

심지어 오늘 기사에는, ‘아이폰, 단점까지 사랑해!’ 하는 타이틀로, 아이폰을 향한 무조건 적인 애정을 범죄심리학에서 다루는 ‘스톡홀름 신드롬’ – 인질로 잡혀 있던 사람이 경찰 조사에서 범인을 옹호하는 변론을 하는 – 으로 비유하는 기사까지 났다. 뭐 어떤 의도나, 이유로 이런 기사를 쓰게 되었는지는 모르지만 참으로 억지스럽고 찌질하다. 대포고냥군은 사실 어떤 브랜드나, 특정 기기를 넋 놓고 찬양하는 그런 ‘바보’ 는 아니다. 그런데, 잠시만 만져보면 안다. 왜 그동안 그렇게 아이폰을 열망했었는지. 판단은 만져본 후 하도록 하자.

뒷판에 저 KCC 마크 새기는데 3년이 걸렸다

꽤 성능이 좋은 AF 카메라

빤딱빤딱-

‘리락쿠마’ 에디션 아이폰

여독 (旅毒) 을 풀어주는 도돌미 오뎅탕과 사케

도돌미 오뎅탕과 사케 ‘마루’

12월 18일과 19일, 이틀에 걸쳐 2009년 전사 워크샵이 있었다.
워크샵 장소는 올 해 처음으로 개장한 평창 ‘알펜시아’ 리조트.
홍보가 부족했던 탓인지 각 슬로프마다 너 다섯명이 겨우 보일 정도.
소위 ‘대통령 스키’, ‘이건희 스키’ 라는 걸 타보고 왔다.

그러나,
실제 영하 17도, 체감 영하 25도 라던 미친듯한 날씨를 처음 겪은 대포고냥군은 정신줄 놨고,
최근 눈이 귀해, 인공설로 만든 슬로프는 반짝반짝 빛나는 얼음판이 되어 있었고-
그 위에서 보드 캐초보 대포고냥군은 스턴트맨 마냥 나 뒹굴었을 뿐이고-
팔다리, 어깨, 엉덩이는 더 이상 내 것이 아니고-

돌아오는 차 안에서 도돌미와입후에게 전화를 했더니, 대포고냥군을 위해 뭔가를 준비했단다.
멸치와 무로 낸 다시에 오뎅을 넉넉히 넣고 끓인 오뎅탕과 데운 사케.
간장에 오뎅을 척척 찍어 베어 물고, 따뜻한 사케를 들이키니 천국이 따로 없다.

아- 진짜 맛있다.

ps. 도돌미와입후가 꼭 ‘오늘’ 오뎅탕 포스트 하고 자래서 이 글을 쓰는 거라고 절대 이야기 못합니다.

타케시

타케시와 이즈미상

2001년, 대포고냥군은 캐나다로 유학을 갔었다. 처음엔 홈스테이에서 학교를 다니다 이러저러한 불편함 때문에 3개월 후 아파트를 렌트했다. 그리 비싼 비용은 아니었지만 아파트가 혼자 쓰기엔 너무 넓어 룸메이트를 구하게 되었는데, 그게 요즘엔 연락이 끊어진 사사모리 (笹森) 군이다. 일본인 룸메이트가 생기자, 자연스레 대포고냥군은 일본 친구들과 어울리게 되었는데 그 중 하나로 알게 된 타케시 (毅) 군. 뭐랄까, 사사모리는 전형적인 조심성 많은 일본인 이었는데, 타케시는 그렇지 않았다. 전혀 조용하지 않고, 지나치게 개인적 성향을 가진 것도 아니면서, 자기 속내를 잘 터놓는 어쩌면 한국사람과 닮은 점이 많았던 그런 친구였다. 그래서인지 정작 룸메이트로 1년 여간을 함께 지냈던 사사모리 보다 타케시와 더 친해졌고, 십여 년이 지난 지금은 진짜 ‘친구’ 가 되어 있다.

타케시라는 이름은 일본에선 아주 흔하다. 보통은 타케시라는 이름에 ‘武’ 나 ‘武志’ 를 쓰는 경우가 많은데, 이 친구는 드물게도 ‘毅’ 라는 한자를 쓴다고 자신을 소개했던 것이 기억난다. 지금은 도쿄에서 의료계의 헤드헌터로써 일하고 있지만, 유학오기 직전에 타케시는 멕시코 요리 가게에서 요리사로 일하다 왔다고 했다. 그래서인지 스시나, 롤 같은 요리를 종종 만들어 우리가 살던 아파트로 찾아오곤 했다. 이 친구에 대해 갑자기 떠오르는 에피소드가 있다. 한번은 타케시가 살던 아파트로 친구 몇 명이 찾아간 일이 있었는데 파티 비슷한 것을 하고서 피곤해서 바닥에 누워 잠깐 눈을 붙였던 것 같다. 대포고냥군은 아마도 뭔가 행복한 꿈을 꾸었던 것 같고, 눈을 떠보니 바로 앞에 자고있었던 타케시를 꼭 안고 있는거다. 아, 그 민망함이란… 아마도 타케시는 날 위해서 계속 자는 척 했던 것 같다.

사실, 타케시가 진짜 친구가 되었다고 느낀 것은 아마도 2007년의 결혼식 때였을게다. 결혼 전에도 메신저 등으로 자주 수다를 떨곤 했던건 사실이지만, 대포고냥군이 결혼한다고 타케시에게 이야기 했을때 ‘꼭 가겠다’ 고 했던 말을 대포고냥군은 진심으로 받아들이지 않았었다. 그런데 휴가 까지 내서 타케시가 ‘정말로’ 온 것이다. 말쑥한 검정 수트에 포켓에 행커치프까지 꽂고. 길을 가다 만난 지인에게 시간나면 술 한잔 하자는 것 같은 맘에도 없는 말을 남발했던 대포고냥군은 한없이 부끄러워졌다. 결혼식 날 타케시의 참석은 내가 언젠간 꼭 갚아야 할 ‘빚’ 이 되어버렸다.

얼마전, 타케시가 메신저로 여자친구가 생겼다고 했다. 대포고냥군이 한국에 놀러오라고 했더니 꼭 가겠단다. 역시나, ‘내뱉으면 실행에 옮기는 성격인’ 타케시는 11월 20일 비행기를 예약했고 여자친구인 이즈미 (泉) 상의 손을 꼭 잡고 입국했다. 난생 처음 집에 찾아오는 외국인 (!) 을 겪게된 도돌미와입후는 엄청 긴장했다. 심지어 한복을 입고 나가야 되는것 아니냐고 했다;;; 한 끼 정도 집 밥을 해 먹일거라던 도돌미와입후는 메뉴를 결정하는데만 일주일 걸렸다. 타케시가 좋은 친구니 당연한 것일지도 모르지만, 이즈미상은 참으로 ‘좋은’ 사람이었다. 3일간, 다들 즐겁게 이야기 하고 맛있는 한국 음식을 찾아 다녔다. 도돌미와입후는 이즈미상에게 한글 읽는 법을 가르쳤다. 마지막 날에는 ‘산사춘’ 따위의 단어들을 읽을 수 있게 되었는데, 가르쳐 놓고 엄청 뿌듯해 했다는 후일담이 있다. 나름, 타케시가 한국에 왔다 간 3일간 우리는 최선을 다했다. 특히 말도 통하지 않았던 도돌미와입후는 참 답답하고 힘들었을텐데 남편의 친한 친구라 더 애써 준것이 너무 고맙다. 결혼은 언제 할 거냐고 타케시에게 물어봤다. 3년간은 계획이 없다길래 왜 3년이냐고 물었더니, 돌아가신 아버지가 산 집의 대출이 3년 후면 모두 상환된다는 말을 한다. 왠지 맘이 찡하다. 그래… 역시 타케시는 똑바른 놈이야. 결혼식엔 무슨 일이 있어도 꼭 가마 했다. 물론 ‘진심’ 으로 말이다.

오른쪽 부터 타케시, 마이코, 타쿠야 – 2002년 여름, Vancouve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