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별 글 목록: 2012년 10월월

늑대아이

'늑대아이 아메와 유키' 가 원제

‘늑대아이 아메와 유키’ 가 원제

시간을 달리는 소녀 (時をかける少女), 섬머워즈 (サマ-ウォ-ズ) 의 감독 호소다마모루 (細田守) 의 신작 애니메이션 ‘늑대아이’. 전 작 들을 즐겁게 감상했었기에, 꽤 기대 중이었다. 그러나 현실은 상영관 거의 없음. 게다가 하루에 딱 2회 상영. 인터넷으로 티켓 예약을 하다 부글부글 뭔가 오기가 생겨버렸다. 그래… 내 생애 처음으로 조조를 보는거다. 해서, 그렇게 토요일 아침 9시로 예약을 하게 된다. 뭔가 오전의 극장은 졸라 조쿤? 사람도 없고, 1층에 있던 스타벅스에서 괜히 크로와상을 먹으며 영화 시간을 기다리기도 하고 말이지… 차도 가져오지 않아서인지 왠지 마음도 가볍다.

사실, 얼마 전에 돌돌미와 무슨 영화를 보러갔다가 우연히 이 애니메이션의 예고편을 보게 되었었는데, 트레일러 상으로는 귀엽고 밝기만 한 그런 애니메이션이라 생각했었다능. 게다가 이번 ‘늑대아이’ 를 보면서 뭔가 호소다마모루 감독의 애니메이션에는 이상한 점이 있다는 것을 발견했다. 늑대아이 초반 스토리 자체는 전혀 슬프거나 하지 않았는데도, 보는 중 내내 울컥울컥 하는거다. 뭔가 이건… 고교 시절, 햇살이 좋은 날에 학교 스탠드에 앉아 멀리 운동장에서 미친듯 축구를 하는 놈들을 보고 있는데, 나는 한 없이 멈춰 있는 듯 한 그런 느낌. (뭔가 망한 것 같은 표현) 아마도 의도 한 것이겠지만, 꽃밭 씬을 비롯하여, 배경들이 매우 정적인 가운데, 작은 요소 – 지나가는 행인들도 작게 표현한다 – 들만이 아주 느리게 움직여 뭔가 애잔한 분위기를 자아낸달까.

강의실에서 만난 늑대인간을 사랑하게 된 하나. 그렇게 태어난 유키와 아메. 인터넷 상에 떠도는 늑대아이의 감상평 중에는, 늑대와 사람 사이에 아이가 생긴다는 설정 자체가 말이 안된다는 비평이 있던데, 그런 인간들에겐 네셔널지오그래픽 같은 다큐만 보며 평생을 살라고 해 주고 싶다. 뭐, 하고 싶었던 말은 이 애니메이션의 주제인 늑대 아이 유키와 아메의 이야기로 중심을 옮기는 데 있어서, 출생 배경 따위에는 신경이 쓰이지 않았을 만큼 자연스러웠다는 것이다. 사실, 호소다마모루 감독이 늑대아이를 통해 말하고자 하는 이야기는 미야자키하야오 감독이 바람계곡의 나우시카 (風の谷の ナウシカ), 천공의 섬 라퓨타 (天空の城ラピュータ), 모노노케히메 (もののけ姫), 이웃의 토토로 (隣のトトロ) 같은 작품에서 보여주고 싶어했던 그것과 많이 닮아 있다. 인간 혹은 문명과 자연의 공존 혹은 인간이 자연을 바라보아야 하는 관점과 같은 것이 늑대아이의 메인 주제이다. 늑대인간은 자연, 하나는 자연을 사랑하는 인간, 아이들은 그 자연과 인간의 매개체이다. 사고로 늑대인간이 주검으로 발견되는 장면에선 옆에 하나에게 가져다 주려고 했던 것 같은 꿩 한마리가가 죽어 있다. 이 장면에서 먹을 것을 찾기 위해 인간이 만든 고속도로를 목숨을 걸고 횡단하다 로드킬로 죽어 나가는 동물들이 떠 올랐던 것은 나의 비약인 것일까. 그 주검의 허망한 눈은 늑대인간이 눈이 아닌 동물의 그것이다. 그 뿐만 아니라, 보호소에 갖혀 아메와 대화하던 생기를 잃은 늑대, 잠시라도 한 눈을 팔면 아이들에게서 드러나는 늑대의 귀와 꼬리. 그리고 그것을 필사적으로 사람들 눈으로 부터 숨기려 하는 하나. 그러나 아메는 자연으로 돌아가고싶어 하며, 유키는 학교에서 순간 드러난 야성으로 친구를 상처입힌다.

산으로 돌아간 아메를 찾아 정신없이 산을 오르는 하나. 그러나 곧 소용없는 일임을 깨닫는다. 인간이나 자연은 모두 본래 있던 곳에 있어야 가장 아름다운 것이라고 호소다마모루 감독은 늑대아이를 통해 이야기한다. 인간이 언제부터 이 지구의 주인이었던가. 서구의 프론티어정신이라는 미명 하에 자연은 인간이 순응시키고 굴복시켜야 할 대상이라 착각해 왔던 것은 아닌지 다시 한번 생각하게 해준, ‘늑대아이’ 를 올해 최고의 영화라고 평하고 싶다.

광해, 왕이 된 남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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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 다크나이트 라이즈가 성황일 때, 꼭 IMAX 2D로 봐야겠다며 2주 후로 예매를 해 두고서 온라인 커뮤니티들의 게시판 스포를 피해다니느라 힘들었던 것을 생각하면, 스포일러는 안 해야지 싶다. 감상 평에 들어가기 전에 먼저 점수를 주자면, 90점. 하필이면 ‘광해, 왕이 된 남자’ (이하, 광해) 를 봐야지 했던 그 날, 회사 동료들과 영화 이야기를 하다가 이 영화를 봤다는 모 대리께서 ‘스토리 진행이 더디고, 일반 드라마 보는 느낌이었다.’ 라고 평 하셔서, 개인적으로 몹시 걱정 하였으나, 그것은 영화 취향의 차이였을 뿐 기우였다. (미안 백대리…)

사극 – 대포고냥군 기준으로 한복을 입고 나오는 – 을 극장에서 보았던 적이 손에 꼽을 정도 였던 것 같은데, 아마도 2003년의 ‘스캔들 – 조선남녀상열지사’ 와 2005년 개봉이었던 ‘왕의 남자’ 를 본 것이 마지막이었을 듯 싶다. 비록 보진 못했지만 개봉 된 사극이 꽤 있었던 것으로 아는데, 대부분 스릴러, 코미디, 에로(?) 같은 장르인데다 대포고냥군이 사극에 대해 비쥬얼이나 스토리의 완결성 면에서 좀 더 강한 잣대를 들이미는 경향이 있는 것도 사실이다. 사극은 고풍스럽고 좀 진지해야 제 맛이랄까… 흠흠…

우선, 광해를 보기 전에 대포고냥군이 기대했던 포인트는 이병헌과 류승룡의 연기력이었고, 살짝 걱정했던 구석은 중전 역으로 살짝 가볍지 않을까 했던 한효주와, 혹시나 왕이된 남자라는 제목이 조금은 거창했던 탓에, 감독이 조금 스케일에 있어서 욕심을 내지는 않았을까 하는 정도였다. 뭐 이런 기대와 걱정 포인트는 철저히 대포고냥군의 좁아터진 안목 탓이니 비난은 사양한다. 또, ‘광해’ 가 개봉된 후 광해라는 임금이 실제는 어떤 인물이었다는 둥 말들이 많던데, 어차피 영화란 다큐멘터리가 아닌 이상 픽션이니 본 아티클에서 영화의 리얼리티에 대해서는 할 말이 없다. 그러나 영화 자체의 사실성 여부를 떠나 스토리 전개로만 본다면 암살의 위험을 피하기 위해서 왕의 대역을 세운다는 식상한 주제로 시작했으나, 꽤 잘 풀어 나갔다는 느낌이랄까.

‘적절하게 가볍고, 무겁다.’

‘광해’ 는 꽤 밸런스가 좋은 영화다. 관람 전에 사전 정보 하나 없이 가는 걸 좋아하는 대포고냥군은 영화 시작 전에 잔뜩 긴장하고 있었다가 뭐랄까 오히려 가벼워서 안심했달까… 뭔가 제목만 보고선 ‘광해’ 는 어두운 분위기에, 조선의 군주로써의 그의 어깨를 짓누르는 무게감에 집중하는 그런 영화인 줄로만 알았었나보다. 그러나 ‘광해’ 는 결코 무겁지 않았다. 그렇다고 경박하지도 않았으며, 영상미도 매우 훌륭했다. 광해와 하선을 연기 할 때, 완전히 다른 사람 같았던 이병헌의 연기는 소름 끼칠 정도로 인상 깊었으며 허균 역의 류승룡 아저씨와 조내관 역의 장광 아저씨의 깨알같은 연기에 영화를 보는 내내 참 많이 웃었던 기억이다. 또, 영화에 얹혀 있는 러브라인은 매우 단순하지만 꽤 로맨틱하게 보이는데, 관람 후엔 중전이 한효주였기에 이런 느낌이 가능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까지 들었으니 나도 꽤 편견이 심한 사람인 듯 싶다. 이렇게 적고 보니, ‘광해’는 스토리 보다는 뛰어난 배우들의 연기력으로 –  po이병헌wer – 끌어간 영화였다 싶다.

뭔가 영화를 본 후에, 인터넷 상의 게시판을 보니 광해의 가슴 상처가 처음이랑 다르다는 말이나 감독이 원래 원했던 결말은 개봉판이랑 다르다는 등 ‘석연치 않은 결말’ 이라 평하는 사람들이 많던데, 뭐 개인적으로는 개봉판의 결말도 단순하니 그리 나쁘지 않다는 생각이다. 나이가 드니 뭔가 이지한 것들이 좋아진다는. 뭔가 개콘 ‘불편한 진실’ 의 김기리식 유머가 점점 좋아지는 것 처럼 말이다.